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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나훈아의 팩트?

리치하이브리드 2024. 5. 4.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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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황 나훈아가 2024년 공연을 마지막으로 은퇴선언을 했습니다

     

     

    우리 가요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가수로 1960년대부터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대중가수이지만,

    최근의 그의 모습은 신비주의에 가려진 존재로 젊은이들에겐 알려진 듯합니다

    오늘은 대중적이지만, 신비주의로 쌓인 가수 나훈아의 아리송한 이면들을 팩트체크한

    한겨레신문 칼럼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황 나훈아는 흑수저다?

    아닙니다

     

     

    나훈아는 부산출신으로 실제로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선원출신의 무역업자로 1950년대에 그의 집에는 축음기가 있었고,

    나훈아와 그의 형을 부산에서 서울로 유학을 시킬 정도의 재력을 가졌습니다

    그 시절 나훈아는 공부도 꽤 잘하는 아들이어서 아버지는 의사나 판. 검사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갑자기 가수로 데뷔하게 되자 대로하였고 죽는 날까지 용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훈아가 흑수저 출신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이유는 1970년대 라이벌이었던 남진과 비교되면서 부터입니다

    상당한 재력가이자 국회의원출신 아버지를 둔 남진과 비교당하면서 이유 없이 나훈아는 가난한 집 출신으로

    잘못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작곡할 줄 모른다?

     

    아닙니다

    놀랍게도 정반대입니다 

    노래방에 가장 많은 곡이 등록된 작곡가가 바로 나훈아입니다

    무려 800곡이 넘는 노래들을 작곡하고 등록하였습니다

    그가 불러 등록한 노래음원은 무려 2천 곡이 넘는다고 합니다

    매년 쉬지않고 10곡씩을 발표해도 200년이 걸리는데

    2천곡이 넘는다 하니 정말 대단한 열정입니다

    2천곡이 넘는 노래 중에는 빅히트한 곡들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노래만 하는 가수다?

     

    아닙니다

    가황 나훈아는 본인이 만든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지만,

    다른 가수에게 곡을 주어서 히트한 노래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강진의 땡벌, 이자연의 당신의 의미, 심수봉의 여자이니까 등이 있습니다 

    그중에 강진의 땡벌은 후배가수를 위해 편곡까지 직접 해주며 사례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말, 가황다운 면모가 아닐 수 없습니다

     

    뽕짝 가수다?

     

    그렇습니다

    가황 나훈아는 본인  스스로가 뽕짝가수라고 하였고, 뽕짝이라는 음악장르를 찬양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뽕짝이라는 말에는 음악에 대한 비하 섞인 의미가 있지만, 정작 나훈아는 뽕짝이야말로 우리 한국민의 영혼을 담고 있는

    가장 한국적인 음악이라고 칭송하였습니다

    나훈아의 어렸을 적 꿈은 클래식 성악가였는데 대중가수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자부심이 자리하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싸움을 잘한다?

     

    그렇다고 합니다

    본인 스스로도 각종 인터뷰 때에 싸움실력을 이야기하곤 하였습니다

    폭력사건으로 수차례 경찰서 조사를 받기도 하였고, 과거 공연장에 종종 건달들이 몰려와 여성관객과 가수들에게 시비를 걸 때도 참지 않고 싸웠다고 합니다

    나훈아의 왼쪽뺨에 있는 큰 흉터는 깨진 병을 들고 덤비던 어떤 이와 싸우다가 생긴 것으로 70 바늘 넘게 꿰맨 상처입니다

    한국인이라면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일본공연에서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말해 일본 우익의 협박을 받기도 했는데

    이때 나훈아는 경상도 사투리로 "직일라믄 직이 삐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능력 많은 이단아?

    그렇습니다

    어렸을 적에 공부도 잘했지만, 노래도 잘했습니다

    운동에도 소질이 있어 부산에서는 야구선수로도 뛰었다고 합니다

    1951년생 동갑내기 허구연 총재가 옆 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건희 회장의 초대를 거절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나훈아는 "나는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노래하니까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표를 끊으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밖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초대도 거절하였다고 하며, 정치계 입문권유도 거절했다고 합니다.

    나훈아는 자신감 가득한 이단아임에 분명합니다

     

     

    가황 나훈아~

    그는 힘든 시대를 살아온 한국민에게 많은 울림을 준, 그야말로 대중이 사랑한, 한국민이 사랑한 대중가수입니다

    2024년을 마지막으로 그는 은퇴합니다

    공식적으로 무대에서는 볼 수 없겠지만,

    가황 나훈아가 남겨준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는

    지금 이 시대를 힘겹게 지탱하며 사는 모든 한국민의 가슴속에 아로새겨져 있을 것입니다